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문단 편집) === 정부총통 선거 === 1954년 2월 15일, 장제스는 국민당 7기 중앙위원 임시 전체회의를 소집, 차기 총통 후보를 지명하게 했다. 국민당은 당연히 장제스를 새로운 총통후보로 추대했고 장제스는 맨 처음 [[허잉친]]에게 부총통 자리를 제의하였으나 허잉친이 사양하면서 [[천청]]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이어 1기 국민대회 2차 회의가 2월 19일 타이베이에서 개최되었다. 총 1578명의 대표가 참여했으며 이중 203명이 해외에서 온 대표들이었다. 이들 중 85명으로 주석단을 선출하고 [[후스]]를 임시 의장으로 추천하였다. 후스는 2차 회의가 완전한 합법이며 헌법에 의거하여 총통과 부총통을 선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2차 회의는 미국에 체류하던 부총통 [[리쭝런]]의 탄핵을 결의, 1486명의 출석 대표 중 1403명의 찬성으로 <리쭝런 파면안>을 가결하여 리쭝런을 탐오하여 나라를 그르친 혐의로 파면하고 그 후임은 보선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의 폐기, 수정 혹은 연장 여부가 논의되었으나 정식으로 폐기하기 전까지 이를 계속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결의하여 존속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차 총통 선거에는 중국국민당의 장제스와 천청 외에 [[중국 민주사회당]]에서 서부림이 총통 후보로 출마했으며 국민대표대회가 추천한 [[모더후이]], 왕운오, 석지량이 부총통 후보로 등록했다. 이때 미국에 거주하던 [[쿵샹시]]가 부총통 등록을 시도하였으나 [[장징궈]]가 그를 낡은 사회의 권세있는 집안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함에 따라 출마를 포기하였다. 이후 무당파였던 모더후이와 [[왕윈우]]는 중간에 경선을 포기하였고 최종적으로 서부림, 석지량이 민사당의 총통과 부총통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파일:1954년장제스취임.jpg]]|| || 장제스의 취임 || 3월 21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이 나오지 않음에 따라 4차 투표까지 결선투표를 진행해서 마침내 장제스와 천청이 각각 1507표, 1417표를 얻어 48표, 109표를 얻은 서부림과 석지량을 누르고 2대 총통과 부총통으로 당선되어 1954년 5월 20일에 취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